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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맛기행 (초당순두부, 감자옹심이, 곰치국, 메밀전, 가오리찜)

by twin-rabbit 2026. 5. 15.

메밀

 

요즘은 어딜 가도 먹을 것이 많습니다만, 강릉을 여행해 보면 먹고 싶은 것들이 참 많습니다. 강릉 먹거리를 찾아보면 젊은 여행객들의 입맛을 겨냥한 화려한 퓨전 음식들이 넘쳐나지만, 강릉의 진짜 힘은 척박한 땅과 거친 바다를 일궈온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토속 음식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이번 강릉 미식 탐방기 1편에서는 관광객을 겨냥한 먹거리가 아닌, 강릉의 기후와 토질, 그리고 바다가 만들어낸 진정한 '강릉의 맛' 다섯 가지를 먼저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초당순두부

강릉 미식의 뿌리를 논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초당두부입니다. 초당두부는 허균과 허난설헌의 생가가 있는 '초당동'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일반적인 두부와 달리 동해의 깨끗한 바닷물을 간수로 사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깨끗한 바닷물로 콩물 속의 단백질을 천천히 응고시켜, 일반 두부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유의 부드러움과 깊은 감칠맛을 만들어낸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초당두부를 먹을 때 가장 처음엔 간장이나 다른 양념을 찍지 않은 '모두부'나 '순두부'를 먼저 먹어봅니다. 입안에 넣는 순간 퐁신하고 몽글몽글하게 퍼지는 고소함과 끝에 남는 은은한 짠맛이 참 좋습니다. 양념간장을 곁들여 밥과 함께 먹으면 속이 따뜻해지면서 든든한 한 끼가 되지요. 아주 특별한 맛은 아닙니다만 강릉 초당두부는 다른 곳에서 먹는 두부보다 고소한 맛이 깊다고 해야 할까요? 강릉의 바다가 선물한 천연의 간을 이용한 자연의 맛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최근에는 짬뽕 순두부나 순두부 젤라또 같은 신메뉴들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초당두부는 그 자체로 먹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감자옹심이

강원도의 척박한 땅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난 감자는 강원도민의 생명과도 같은 식재료였다고 해요. 이 감자를 가장 정성스럽게 요리한 음식이 바로 감자옹심이입니다. 감자를 강판에 직접 갈아 전분을 가라앉힌 뒤, 남은 건더기와 섞어 새알처럼 빚어내는 과정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옹심이는 새알(경단)의 강원도 방언이라고 하는데 쫄깃하면서도 서걱거리는 특유의 식감은 다른 어느 음식에서도 느껴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에요. 특히 강원도 산 감자로 만들어야 특유의 식감이 더 살아난다고 하네요.

멸치나 다시마로 우려낸 맑은 국물에 메밀 칼국수와 함께 끓여낸 옹심이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납니다. 강릉 성남시장이나 중앙시장 인근의 오래된 옹심이 집들은 여전히 전통 방식을 고수해 투박하지만 정직한 맛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가본 옹심이집은 시장 근처는 아니었지만 전통 방식으로 만든 옹심이를 파는 곳이었는데요 옹심이만 전문적으로 파는 곳이어서 메뉴가 몇 가지 되지 않는데도 사람이 아주 많았습니다. 주로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러 온 가족들이 많이 보였어요. 화려한 양념 대신 들깨가루의 고소함과 감자 본연의 단맛이 어우러진 감자옹심, 강릉 여행 중 꼭 한번 맛봐야 하는 음식입니다.

곰치국

강릉 해안가를 여행하다 보면 식당 입구에 커다랗고 흐물거리는 물고기가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게 바로 '곰치(미거지)'입니다. 예전에는 그 외형이 험하고 살이 물러 어부들이 잡자마자 바다로 다시 던져버렸다고 하여 '물메기' 또는 '물텀벙'으로도 불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살이 워낙 부드럽고 국물 맛이 시원해 지금은 강릉을 대표하는 최고의 해장 음식이자 귀한 대접을 받는 별미가 되었습니다.

강릉식 곰치국의 핵심은 묵은지입니다. 잘 익은 김치를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풀어 얼큰하게 끓여낸 곰치국은, 숟가락으로 살점을 뜨면 입안에서 녹아내릴 듯 사라지는 식감이 일품입니다. 비린내가 거의 없고 국물이 담백하여 전날 강릉의 분위기에 취해 술 한잔을 곁들인 여행자들에게는 이보다 좋은 선택이 없겠지요. 주문진항이나 강릉항 인근의 오래된 식당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곰치국 한 그릇 먹는다면 강릉 바다를 제대로 느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메밀전병과 메밀전

메밀은 쌀이 귀하던 시절 강원도 산간 지역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던 주식이었습니다. 강릉의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철판 위에 얇게 부치는 고소한 메밀전 냄새가 발길을 잡습니다. 메밀가루를 묽게 반죽하여 배추 한 잎을 툭 얹어 부쳐낸 메밀전과 매콤하게 양념한 무채나 김치를 넣어 돌돌 말아낸 메밀전병은 심심한 듯 보이지만 먹을수록 매력 있는 음식이에요. 저는 둘 다 좋아하지만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김치를 넣은 메밀전병을 고를 것 같습니다. 메밀전병의 매력은 메밀 특유의 거친 듯하면서도 담백한 맛과 속 재료의 알싸한 맛이 조화를 이루는 데 있습니다. 특히 강릉 지역에서 생산되는 메밀은 그 향이 깊어 씹을수록 단맛이 배어 나옵니다. 갓 부쳐낸 메밀전에 걸쭉한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이 그만이죠. 메밀전은 식어도 맛있는 음식이니 파는 곳이 있다면 꼭 포장이라도 해서 저녁에 막걸리와 함께 드셔보세요. 여행의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 일 겁니다.

가오리찜

생선찜 중에서도 강릉을 비롯한 동해안 지역에서 유독 사랑받는 것이 가오리찜입니다. 강원도 외의 지역에서는 먹어보기 힘든 음식이기도 해요. 가오리는 다른 생선과 달리 뼈가 연골로 이루어져 있어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이 독특하며, 결대로 찢어지는 부드러운 살점이 특징입니다. 강릉식 가오리찜은 큼직하게 썬 무와 감자를 밑에 깔고, 고춧가루와 간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을 얹어 푹 쪄내는데요, 잘 조려진 무와 감자의 단맛이 가오리 살에 배어들어 깊은 풍미를 자랑합니다. 밥반찬으로 곁들여 먹지만 가오리찜 양념장에 꼭 밥을 비벼서 드셔보세요. 따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는 별미 중의 별미랍니다.
과거 동해안 어촌 마을에서 잔칫날이나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이 가오리찜을 해서 내놨다고 해요. SNS를 통해 유명해진 전문점들이 많고 편하게 집에서 배송받아먹어볼 수도 있지만, 강릉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가오리로 현지에서 직접 요리한 것은 배달된 것과는 차원이 다를 겁니다.

여행자를 위한 미식 정보

주말에는 워낙 관광객들이 많은 곳이기 때문에 강릉의 토속 음식을 제대로 경험하고 싶다면 가급적 이른 시간이나 점심 시간대를 공략하는 것이 좋습니다. 초당두부 마을은 아침 7~8시경부터 문을 여는 곳이 많아 아침 식사로 제격인데, 유명한 곳들은 아침부터 줄을 서서 먹기도 한답니다. 시장 내 메밀전 상점들은 종일 메밀전을 계속 부쳐내긴 하지만 오후 늦은 시간에는 재료가 소진될 수 있으니 늦지 않게 방문해 보세요.

강릉 여행을 계획 중이시라면 하루 한 끼 정도는 이 지역의 흙과 바다가 빚어낸 정직한 음식들을 꼭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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